"이준석은 윤석열을 닮았다, 더 교묘하게!"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 저격하며 탈당 및 무소속 대선 출마 전격 선언! 승무원에서 이미지 컨설턴트, 국회의원, 당 대표, 그리고 이제는 독자 후보까지... 파란만장한 그녀의 프로필과 이준석과의 갈등 전말, 앞으로의 행보를 심층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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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아 프로필
- 이름: 허은아 (許垠娥)
- 출생: 1972년 5월 26일
- 나이: 2025년 4월 23일 기준 만 52세
- 출생지: 서울특별시 (영등포 청과물시장 인근 성장)
- 학력:
- 서울문창국민학교 졸업
- 대방여자중학교 졸업
-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 / 전문학사)
-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 / 학사)
- 연세대학교 대학원 (광고홍보학 / 석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
- 가족: 부모님, 남편, 자녀 (구체적인 남편 및 자녀 정보는 비공개)
- 주요 경력:
-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5년 근무)
- 이미지 컨설팅 회사 '예라고' 대표 (1999년 창업)
- '디아이덴티티' 대표
-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소장
- 경일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 교수
- 제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 미래한국당 → 국민의힘)
-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원내부대표
-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
- 초대 개혁신당 대표 (2024년 5월 ~ 2025년 1월)
- 現 제21대 대통령 선거 무소속 예비후보
- 재산: 약 45억 1711만 원 (2024년 국회의원 재산 신고 기준)
- 기타: MBTI, 종교, 키, 몸무게 등 미공개
승무원에서 이미지 컨설팅 전문가, 교수로
허은아의 정치 입문 전 이력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영등포 청과물시장 과일가게 딸로 태어난 그녀는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약 5년간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승무원 생활을 접어야 했고, 이는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년, 그녀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지 컨설팅 회사 '예라고'를 창업합니다. 자본도 인맥도 부족했지만, 특유의 열정과 끈기로 하루에 200곳 이상 직접 발로 뛰며 영업하는 노력을 통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이미지 컨설팅 분야, 특히 정치인과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PI(Personal Identity) 컨설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들과 대기업 CEO들이 그녀의 컨설팅을 받았으며, 방송 출연과 강연 활동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패션 스타일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학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 철학 학사, 연세대 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 다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또한 경일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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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입문: "당의 때를 벗겨달라"는 요청
이미지 컨설턴트로서 정치인들과 교류해왔던 허은아는 2017년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 캠프에 홍보특보로 참여하며 정치와 간접적인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2020년, 당시 자유한국당(現 국민의힘)의 외부 인재 영입 제안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당 지도부의 "당의 묵은 때를 벗겨달라"는 간곡한 설득과 보수 정당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는 멋이 없다"며 정치 입문을 반대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고 멋진 보수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86세대에 대한 실망감과 청년 세대에 대한 책임감 역시 그녀가 정치에 뛰어든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국회의원 시절: 보수 혁신과 이준석과의 동행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 허은아는 초선 의원으로서 보수 혁신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동료 의원들과 함께 '명불허전 보수다'라는 공부 모임을 주도하며 정책 역량을 키우고 초당적인 교류를 시도했습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뉴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청년 오픈마이크' 이벤트를 기획, 청년들이 직접 유세차에 올라 연설할 수 있는 파격적인 선거 운동 방식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 그녀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준석 의원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이준석계' 또는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의 일원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하며 이준석 대표 체제를 뒷받침했고,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와 빠른 의사결정으로 당직자 및 기자단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준석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동행하고, 그가 당내에서 정치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곁을 지키며 의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개혁신당 창당과 대표 선출: 새로운 도전
하지만 2022년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면서 허은아 의원 역시 수석대변인직에서 물러나는 등 당내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온건 보수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활동했지만, 결국 2024년 1월 3일, 이준석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창당에 합류하기 위해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직까지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결정은 '기득권을 버리고 소신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지지자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녀의 정치적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신당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2024년 5월(*추정*), 개혁신당 제1차 전당대회에서 허은아는 예상을 깨고 이기인 후보를 누르고 초대 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원 투표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국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는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에 전략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현역 의원들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3.78%의 득표율로 낙선했습니다.
파열음과 리더십 위기: 이준석과의 갈등
개혁신당 대표로서의 허은아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2024년 12월경부터 당 운영 방식과 주도권을 둘러싸고 창당 동지였던 이준석 의원 측과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의 핵심에는 허은아 대표가 이준석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철근 사무총장을 경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허 대표 측은 이준석 의원이 당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사무총장 경질의 정당성을 내세웠습니다.
반면, 이준석 의원 측은 허 대표가 당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당직자들을 마치 개인 보좌진처럼 부리는 등 '갑질'과 '권한 남용'을 일삼고 있다고 반박하며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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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소환과 대표직 상실: 법적 공방까지
당내 갈등이 심화되자, 당원들 사이에서는 허은아 대표에 대한 불신임 여론이 확산되었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당원 소환'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2025년 1월, 당원 소환 투표가 실시되었고, 투표 결과 93.93%(또는 91.93%)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허은아 대표 해임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녀는 1월 21일부로 당 대표 직무가 정지되었고, 1월 26일 최종적으로 대표직을 상실했습니다.
허은아 전 대표는 이에 불복하여 직무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2월 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당원 소환 절차에 하자가 없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은아 측은 2월 4일, 이준석 의원과 천하람 최고위원(대표 권한대행) 등을 정치자금법 위반, 사기,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갔습니다. (총선 공보물 제작 비용 및 개혁연구원 운영 관련 의혹 제기)
결별 선언과 무소속 대선 출마 (2025년 4월)
결국 당 대표직 상실과 법적 분쟁 속에서 허은아 전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택했습니다. 2025년 4월 23일, 그녀는 30여 명의 당원들과 함께 개혁신당 동반 탈당을 선언하고, 이번 6·3 조기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이준석 의원을 "거짓 정치인"이라고 칭하며 "개혁은 사라졌고, 당은 이준석 한 사람만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정치가 됐다", "이준석은 윤석열을 닮았다. 그러나 더 교묘하고 철저하게 정당을 사유화했다" 등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녀는 "개혁신당은 더 이상 공당이 아닌, 이준석의 정치적 탐욕을 위한 도구로 추락했다"며, "제3지대의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이겨야겠다"고 무소속 출마의 변을 밝혔습니다.
허은아의 정치 철학과 비전
허은아는 스스로를 '보수 혁신'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 규정해왔습니다. 이미지 컨설턴트로서의 경험을 살려 정치인들의 소통 방식 개선과 '당당하고 멋진 보수' 이미지 구축을 강조했습니다.
기존 정치권의 관행과 폐쇄성, 세대 간 단절을 비판하며 청년 세대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개혁신당 창당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비록 개혁신당과의 여정은 파국으로 끝났지만, 그녀가 추구했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은 그녀의 향후 정치 행보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승무원에서 성공한 사업가, 대학교수, 그리고 국회의원과 당 대표까지. 허은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정치 입문 이후 이준석과의 동행과 결별, 개혁신당에서의 부침은 그녀의 정치 여정에 큰 굴곡을 남겼습니다. 이제 무소속 대선 후보라는 또 다른 시험대에 선 그녀가 과연 어떤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녀의 도전은 이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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